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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이름의 호칭 종류와 유래 대전작명원이 알려주는 어디를 가든 학식을 자랑할 수 있는

대전작명원의 어느 곳에 가도 학식을 자랑할 수 있는 흥미로운 이름의 호칭 종류와 유래

태초에 사냥생활을 하던 시절에도 자신을 알리고 상대를 알려면 이름이 필요했을 겁니다. 낮에는 손짓, 발짓, 눈짓 등 동작이나 소리 등으로 상대를 찾거나 알아볼 수 있었는데, 해가 지면 서로 알아볼 수 없는 것이 상형문자 표기로 저녁 돌멩이 아래 입구에 쓰여져 이름 이름의 근원이 된 이유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은 누구에게나 성과 이름을 갖게 됩니다. 근의 전통을 중요시하는 동양에서는 성 다음에 이름을 붙이고 서양에서는 반대로 이름 뒤에 성을 붙입니다.

이름?관명?허?대명?본명?예전부터누군가를가리키는말에는성명과호칭이있습니다. 성명은 이름이라고 하는데요, 호칭은 이름 외에 부르는 이름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타이메이는 태어나기 전의 호칭이며, 관명은 호적에 등록하는 본명으로, 호는 누구라도 부르기 쉬운 명칭입니다.

태아 이름은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뱃속에 있을 때 짓는 이름입니다. 아명은 태어나서 제일 먼저 부르는 이름입니다. 과거에는 태어난 후 생존율이 낮아 천하게 부르는 것이 관례였습니다.그래서 너무 귀하게 불러주면 하늘이 시기해서 목숨을 앗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죠. 이를천명위복사상이라고합니다. 관명은 본명입니다. 장성하여 집안의 명령에 따라 붙이는 이름으로 호적에 올리는 이름입니다. 생후 일정 기간이 지나 아기의 생존율이 확실해진 후에 지어집니다. 조선시대 민적부에 올리는 이름입니다. 저는 결혼한 후 본명이 아닌 20살, 여자는 15살이 되면 성인식에 해당하는 관례와 계미의식을 거행했습니다. 남자에게는 의복을 입히고 모자인 관을 씌우고 여자에게는 비녀를 꽂아 성인이 되었음을 사회적으로 알리는 절차였습니다. 그 배경에는, 경명사상이 뿌리 깊어, 성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을 꺼렸기 때문에, 누구라도 부르기 쉬운 호칭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호는 명과 자 이외에 누구나 부르기 쉽게 짓는 것을 말합니다.

삼국시대의 성씨?역사적으로 어떻게 지어져 왔고, 어떻게 발달해 왔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삼국시대에 고구려에는 전국시조인 주몽이 국호를 고구려로 하사했기 때문에 고씨라고 불렀고 충신에게는 극씨, 중실씨, 소실씨가 하사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시조 온조가 부여 계통에서 나왔기 때문에 부여씨라 부르며, 중국 왕명 기록에서 인후한서, 진서에는 모두 성씨는 쓰지 않고 이름만 기록되어 있으며, 진서 등에서는 근초고왕(13대)부터 위덕왕(27)까지는 呂로 표기하였으나 무왕(29대)부터는 부여씨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라는 박, 석, 김삼성의 전설이 전해지는데, 유리왕 9년 육부의 촌장에게 이, 정, 손, 최, 설이라고 하는 성을 하사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렇게 고대 부족국가시대부터 성을 사용한 것처럼 기록되어 있으나 7세기 이전에 세워진 신라 진흥왕의 4군데 순수비, 신라 진지왕 3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무술오작비, 진평왕 때에 세워진 경주 남산의 신성비 등의 비문에서는 인명에 성을 사용한 사람은 표지가 없고 마을 이름과 이름만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성은 이 성보다 먼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 성씨?고려시대에는 초기부터 귀족 관료들이 성을 썼습니다. 고려 태조 왕건은 개국공신과 지방의 토호세력을 통합하여 관장하기 위해서 전국 군현을 개편하는 작업과 함께 성을 내려줌으로써 우리 성의 체계를 확립하였습니다. 고려 문종 9년(1055)에 성이 없는 사람은 과거에 급재할 수 없다는 법령이 제정되었고, 이는 한국의 성씨가 널리 보급되면서 백성들에게 일반 백성들이 성을 사용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 역사적 근거가 됩니다.
조선시대 성씨?조선시대 말에는 1909년 새로운 민적법이 시행되면서 노비나 천민 계급으로도 성을 확립했습니다 민적법은 누구나 성씨와 본관을 가질 수 있는 법이었고, 민적법이 시행되면서 우리 국민 모두가 성을 취득했습니다. 이때를 계기로 성이 없던 사람에게 본인의 희망에 따라 호적을 담당한 지방 관리가 마음대로 성을 짓거나 하인의 경우 주인의 성과 본을 따를 뿐만 아니라 명문가의 성을 따라서 성을 정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성씨? 우리나라의 성씨는 약 250개, 본관은 약 3000개였으나 국제화 시대에 귀화한 사람이 많다 보니 새로 생긴 성씨가 늘어나서 성씨는 약 340개가 되었습니다.
이름의 경향. 일본의 식민지배와 이후 60년대까지 '성', '순자' 등 일본식 명명법에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점차 한국식 이름으로 명명하게 되면서 80년대 들어서는 순수한 한글 이름을 붙이는 일이 유행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글 이름은 한자가 부여되지 않아 중복되는 현상이 두드러지는 단점이 드러났기 때문에 2000년대 들어 다시 한자를 부여하는 이름으로 개명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현재는 한글에 한자를 부여하는 명칭이 일반화되고 있습니다.
대전명명원, 새 이름연구소에서 어디를 가도 유식해질 수 있는 흥미로운 이름에 대해 알려드렸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름이니까 이름에 대해 어느 정도의 상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고도정보를 대전명명원, 새로운 이름연구소에서 많이 제공합니다.

 

대전작명원에서 알려드릴 흥미진진한 이야기